자연에 동화된 삶/내 삶에 풍경

백담사 ㅡ 영시암

능금꽃 2013. 10. 30. 14:20

 

 

 

【백 담 사】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2리 설악산(雪嶽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이다。

 

이 절에 관한 기록으로는 <설악산심원사사적기 雪嶽山尋源寺史蹟記>와

한용운(韓龍雲)이 편찬한 ≪백담사사적 百潭寺史蹟≫이 있다。

≪백담사사적≫에 의하면, 이 절은 647년(진덕여왕 1) 자장(慈藏)이

설악산 한계리에 창건하였으며, 그 때 아미타삼존불을 조성, 봉안하고

절 이름을 한계사(寒溪寺)라 했다고 한다。

 

창건한지 50여년만인 690년(신문왕 10)에 실화(失火)로 소실되어

719년(성덕왕 18)에 재건하였다。

〈심원사사적기〉에는 이때의 전설이 수록되어 있다。

낭천현(狼川縣)에는 비금사(琵琴寺)가 있었으며,

주위의 산은 짐승들이 많아 사냥꾼들이 많이 찾아 들었다。

 

이로 말미암아 그곳의 산수가 매우 더러워졌지만

비금사 승려들은 그것을 모른 채 샘물을 길어 부처님에게 공양하였다。

그와 같은 더러움을 싫어한 산신령은 하룻밤사이에 절을

설악산의 대승폭포아래의 옛 한계사터로 옮겼다한다。

 

그 사실을 모르는 승려와 과객들이 아침에 깨어나보니

비금사는 틀림없었지만 기암괴석이 좌우에 늘어서고

전후에 쏟아지는 폭포가 있는 산은 이전과 달랐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몰라할 때 갑자기 관음청조(觀音靑鳥)가 날아가면서

“낭천의 비금사를 옛 한계사로 옮겼노라”고 하여

사람들에게 그 신이함을 알렸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이 전설은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 지방 사람들사이에는 춘천부근의 절구골, 한계리의 청동골 등의

지명이 절을 옮길 때 청동화로와 절구를 떨어뜨렸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하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 전설을 통하여 한계사를 중창할때 비금사를 옮겨간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그 뒤 785년(원성왕 1)에 다시 불탔으며, 종연(宗演), 광학(廣學), 각동(覺洞),

영희(靈熙), 법찰(法察), 설흡(雪洽) 등이 중건을 서둘러

790년에 한계사터 아래 30리 지점에 이건하고 절이름을 운흥사(雲興寺)라고 하였다。

그러나 984년(성종 3)에 다시 불탔으므로 승려 동훈(洞薰), 준희(俊熙) 등이

운흥사지 북쪽 60리쯤 되는 곳으로 이건하고 987년 심원사(深源寺)라고 개명하였다。

 

 

 

 

부지런히 겨울을 나기위해 배를 채우고 있는 다람쥐‥

 

 

 

 

 

 

 

 

 

 

 

 

 

 

 

【영 시 암】

내설악에 있는 영시암(永矢庵)은 조선후기의 문장가인 김삼연이

세상에 뜻이없어 찾아든 곳이다。

그는 『영시암기』에서 다시는 인간 세상에 나가지 않기를 맹세하였다。

“인간출세위서(人間出世爲誓)”라고 하였다。

 

‘영시’란 길이 맹세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그당시 나라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가 살던 이곳 영시암을 찾았다고 한다。

그가 지은 기(氣)에 휴양하려는 사람이 먼 곳에서 다투어 몰려왔고

혹 기(氣)를 기르려는 선비들이 사방에서 구름처럼 모여 들었다라고

실려있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 세태를 알수 있다。

이곳에서 김삼연은 수많은 글을 남겼는데 다음의 시는 그중 한편이다。

 

“내 삶은 괴로워 즐거움이 없고 세상 모든 일이 견디기 어려워라

늙어 설악산중에 들어와 여기 영시암을 지었네”

 

 

 

 

 

 

 

 

 

 

 

 

 

 

 

 

산사에도 가을이 찾아오고 단풍도 물들어 가고 있다。

 

 

 

 

백담사 올라가는 길이 구불구불‥ 단풍도 곱게 물들고‥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손잡고 거닐고 싶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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