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진흥왕때 진(陳)나라 사신이 명관대사와 함께 불서(佛書)2,700권과
불사리를 가지고 왔는데 그것을 봉안하기 위해 지은 절이 바로 이곳 “송림사”랍니다.
이때 호국안민(護國安民)을 위한 기원보탑을 세웠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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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숲이 있어 송림사란 이름이 붙여졌지만 지금은 소나무는 없습니다.
예전에 이곳이 울창한 소나무숲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곳 또한 우리나라 비운의 역사가 비켜가지는 못했답니다.
몽골의 침입과 잦은 전란으로 전탑만 남고 소실되어 그 화려했던 과거는
1597년 중창과 이후 1858년에 다시 중창한 흔적이 남아 있으며
부분적인 수리의 흔적이 있으나 고색창연한 단청은
그 세월의 깊이를 느끼게 해 주고
대웅전이란 글씨체가 남성적인 힘이 느껴지는 현판은
조선조 숙종임금님께서 직접써서 내려 주셨다고 합니다.
송림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보물 제189호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의
“오층전탑”으로 흙으로 구운 벽돌을 이용해 쌓아 올렸고
기단은 화강암을 이용 하였으며 탑꼭데기에는 독특한 형식의 금동 머리장식이 남아 있는데,
1959년에 이 탑을 해체복원하면서 많은 유물이 발견되어 같이 국립 박물관에 보관되었고
이것은 원형대로 모조한 것이라고 합니다. 비록 모조품이라 할지라도
통일신라시대 금동상륜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답니다.
새로 지은 듯 단청을 하지않아 말간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범종각”
불음(佛音)을 전하는 사물!~ 목어, 운판, 법고와 범종이 있는 건물이죠..
정묵당 섬돌위에 비스듬히 놓여진 검정고무신에 눈길이 머문다.
어린시절의 회상에 잠김도 잠시 구도자의 절제된 치열한 삶을 엿보며
채우려고만 애를 쓰는 현재의 부끄러운 내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오늘 이곳에 들러 종교적인 가르침을 받았다면
바로 이 한장의 사진에 담긴 모습이다.
나 자신을 반성하고 고무신위에 걸린 주련이 부처의 모습이 되고
쓰인 글귀는 부처의 음성이 되어 울린다......._()_
(如今自作 還自受) 여금자작 환자수: “오늘 네가 지은 것 만큼 스스로 돌려 받는다.”
송림사앞 계곡에는 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찾아 온답니다.
발그레한 뺨처럼 순박하고 고운 자태의 꽃! 능소화앞에서 한 컷~!^^
어느날 통째로 툭!~하고 떨어지는 자존심 강한 능소화..!!
곱고 화사한 모습과 수심한 모습으로 담을 타는 여인의 꽃 능소화!
애잔한 사연의 전설이 전해져오는 꽃이지요~